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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담마파다 4.꽃의 품 [Pupphavagga]




법구경 | 담마파다 4.꽃의 품 [Pupphavagga]


1.
누가 이 땅과 이 야마의 왕국과

이 천상계와 인간계를 정복할 것인가?

화환을 만드는 자가 꽃을 따 모으듯,

누가 잘 설해진 진리의 말씀을 따 모으랴?



2.
학인이 이 땅과 이 야마의 왕국과

이 천상계와 인간계를 정복하리라.

화환을 만드는 자가 꽃을 따 모으듯,

학인이 잘 설해진 진리의 말씀을 따 모으리.



3.
이 몸은 물거품과 같다고 알고

아지랑이와 같다고 깨닫는 님은

악마의 꽃들을 잘라버리고

죽음의 왕의 시야를 넘어서리라.


4.
오로지 꽃들을 따는데

사람이 마음을 빼앗기면,

격류가 잠든 마을을 휩쓸어가듯,

악마가 그를 잡아간다.





누가 진리의 빛나는 길을 발견할 것인가? - 오쇼 라즈니쉬 법구경 강의中
 






어느 누가 이 세상을 정복하고,

세상의 모든 신과 죽음의 세계를

정복할 것인가?

어느 누가 법의 빛나는 길을 발견할 것인가?

오쇼 법구경 강의 : 이 세상은 죽음의 세상이다 그리고 그대가 상상으로 창조한 신들은 이 세상의 일부이다.
그대, 그대의 세상, 그대의 신들 모두가 죽을 운명이다.
이 세상은 그대의 욕망에 의해 창조되었다. 신들 또한 그대의 욕망과 상상에 의해 창조되었다.
그대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떻게 진짜 신을 알 수 있겠는가? 어떻게 진짜 세상을 알 수 있겠는가?
그대가 아는 것은 모두 욕망의 투영이며 꿈이다.
꿈꿀때에는 그것이 실제처럼 보인다.
그대는 꿈을 꾸는 동안에는 그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대가 할 것이다.

꽃을 구하는 자가

가장 아름답고 드문 꽃을 발견하듯이.

오쇼 법구경 강의 : 그렇다! 그대는 이 죽음의 세상을 정복할 수 있다.
존재의 가장 깊은 핵심에서 그대는 시간의 부분이 아니라 영원의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시간 안에 존재하지만 영원에 속한다.
영원이 시간의 세상안에 뚫고 들어온 것, 그것이 바로 그대이다.
그대는 죽음의 육체 안에 사는 불멸의 존재이다.
그대의 의식은 죽음과 탄생을 모른다.
다만 육체가 낳고 죽을 뿐이다.
그러나 그대는 자신의 의식을 인식하지 못한다.
의식 자체를 의식하는 것, 이것이 명상의 모든 것이다.
육체안에 거주하는 자를 아는 순간, 그대가 누구인지를 아는 순간, 그대는 죽음의 세계를 넘어선다.
순간적이고 덧없는 모든 것을 초월한다.







이 몸은 다만 물거품이고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것을 이해하여

욕망의 꽃화살을 꺽어버려라

그러면 그대는 보이지 않는 자가 되어

죽음의 왕도 그냥 지나치리라.

오쇼 법구경 강의 : 육체는 덧없는 현상이다. 육체는 존재하지 않은 때가 있었으며,
어느 날엔가 다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육체는 시간적인 존재이다.
그것은 물거품과 같다.

육체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음이 성장하고 있다.
육체안에는 죽음이 숨어 있으며 늙음이 기다리고 있다. 다만 시간상의 문제일 뿐이다.
육체에 관한한, 우리는 끊임없이 죽어간다....물거품이 사라져간다.
칠십년이란 세월에 현혹되지 말라.
영원의 선상에서 보면 칠십년은 아무것도 아니다. 칠십년이란 세월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물거품처럼 순간적이다.

육체는 그림자 조차도 아니다. 육체는 그림자의 그림자이다.
붓다는 육체의 비실제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육체는 메아리의 메아리이다.
실체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 신은 실체이다. 그것을 진리라고 불러도 된다.
붓다가 그것을 '담마'라고 부르길 원했다.
신은 궁극적인 실체이다.
그다음에 영혼은 그의 그림자이며, 육체는 그림자의 그림자이다.
육체에서 영혼, 영혼에서 신으로 - 영원한 법, 담마 - 나아가라.

영원한 법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정지하지 말라.
오늘 그대는 여기에 있지만 내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소중한 날을 헛된것에 매달려 낭비하지 말라.
사람들은 계속 헛된 것을 긁어모으다가 어느날 빈 손으로 떠난다.
그들이 평생 동안 모았던 모든 것이 뒤에 남는다.
그들은 단 한 가지도 가지고 갈 수 없다.

'그러면 그대는 보이지 않는 자가 되어
죽음의 왕도 그냥 지나치리라.'

죽음은 오직 욕망을 볼 수있다. 욕망을 버리면 그대는 죽음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그때엔 죽음이 그대를 건드릴 수 없다.
욕망이 없으면 그대는 순수한 의식일 뿐...그 밖의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는 더이상 마음과 육체에 동일시되지 않는다.
그대는 자신이 주시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안다.
그때, 그대는 죽음을 볼 수 있지만 죽음은 그대를 보지 못한다.







그리고 여행을 계속하라.

오쇼 법구경 강의 : 이 문장을 명심하라....
그때엔 진정한 여행, 진정한 순례의 길이 시작된다.
그 전에는 똑같은 욕망을 갖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었을 뿐이다.
더 많은 돈, 더 많은 권력....악순환의 연속일 뿐,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일단 모든 욕망을 버리고 나면, 그때엔 여행을 계속하라.
이제 그대는 무한한 존재계, 존재계의 영원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제 수많은 신비가 그대 앞에 한 겹씩 벗겨진다. 모든 존재계가 그대의 수중에 있다....이제,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







아름다운 꽃을 찾아 헤매이듯,

산란한 마음으로

세상의 감각적 쾌락에서

헛된 행복을 구하는 자를

죽음은 순식간에 잡아간다.

마치 잠든 마을을 홍수가 휩쓸어가듯이.

오쇼 법구경 강의 : 만일 명성을 얻는다면 그대는 곧 지치게 될 것이다.
많은 돈을 벌었을 때, 그대는 그 돈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를 것이다.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 된다면 그대는 노예가 된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사람들의 기대감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에 대한 존경심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다.
그대가 명성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직 유명하지 않을 때뿐이다.
존경받는 인물이 되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사람들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와 그대가 자기들의 기대를 만족시켜주는지 아닌지 관찰한다.
그대의 자유는 완전히 사라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산다.
붓다는 그것이 잠든 마음과 같다고 말한다.
죽음의 홍수가 다가와 모든 것을 휩쓸어간다.







예쁜 꽃을 따모으듯이

감각적 쾌락에 마음이 빠져있는 자를

죽음은 어느새 잡아간다.

그는 세상의 쾌락에 대한 욕망을

다 채울 수 없을 것이다.

오쇼 법구경 강의 : 사회가 부유해질 때 사람들은 '이제 다음 번에는...' 하고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런데 아무것도 남아 있는 것 같지 않다.
외부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을때 그대는 생각하기 시작한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모든 것이 여기에 있는데 나는 여전히 공허하다."
그대는 내면으로 방향을 돌리기 시작한다.
거지가 만족한 듯이 보이는 것은 그들이 풍요의 맛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들은 매우 많은 불만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의 허탈함을 깨닫기 때문이다.

부유한 나라는 가난한 나라보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대는 너무 절망해서 미쳐갈지도 모른다.
부유한 나라에는 가난한 나라보다 미친사람이 더 많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부유해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면이 있다. 그러나 풍요는 또한 매우 중요한 일면이 있다.
왜냐하면 풍요는 그대를 종교로 몰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 가느냐는 그대에게 달렸다. 양자택일의 가능성이 있다.
부자는 신경증에 걸리고 자살을 하거나, 또는 명상가가 될 수밖에 없다. 제삼의 선택은 가능하지 않다.

세상에는 두 가지의 종교가 있다.
하나는 가난한 자의 종교성인데, 그 종교성은 매우 세속적이고 물질적이다.
다른 하나는 부자들의 종교성이다. 그들의 종교성은 매우 영적이고 비물질적이다.
부유한 사람은 기도할 때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만일 여전히 돈을 위해 기도한다면 그는 아직 충분한 부자가 아니다.

명심하라, 그대가 세상을 살 만큼 살고 그 공허함을 알았을 때 생기는 종교와,
물질적인 욕구가 아직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종교는 그 맛이 완전히 다르다.








벌은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해치지 않고

꿀을 모은다.

그렇듯이 지혜로운 자는

정착함과 동시에 방랑하리라.

오쇼 법구경 강의 : 붓다는 의식의 각성을 이룬 사람은 벌처럼 산다고 말한다.
그는 결코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손상시키지 않는다.
그는 조용히 살아간다. 그는 오직 필요한 만큼만 요구한다.
그의 삶은 소박하다.

내면에 정착하라. 내면의 중심에 존재하라.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방랑자가 되라.
내면에 뿌리를 내려라.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한 곳이나 한 사람에게서 오래 머물지 말라.
집착과 소유욕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벌처럼 되라.

붓다는 벌처럼 살라고 말한다.
춤추고 노래하고 축제를 즐기라.
그러나 벌처럼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이동하라.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하라. 그대가 성숙하는 것은 오직 경험을 통해서이다.
소유적이 되지 말라. 한 곳에 매이지 말라. 강물처럼 흘러라.
웅덩이에 고여 썩어가는 물이 되지 말라.
내면에서는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라. 그러나 외부에서는 언제나 방랑자가 되라.






무엇을 행하고 행하지 않았는지

그대 자신의 과오를 살피라.

다른 사람의 허물을 살피지 말라.

오쇼 법구경 강의 : 그의 말은 그대가 저지른 잘못을 후회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대의 선행을 스스로 칭찬하고 자랑하라는 말도 아니다.
그의 말은 다만 앞으로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옳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잘 성찰하라는 말이다.
후회하라는 말이 아니라 성찰하여 기억에 새기라는 말이다.
이것이 기독교적인 태도와 불교적인 태도의 차이점이다.
기독교인들은 후회하기 위해 기억한다. 따라서 기독교는 죄의식을 심어준다.
그러나 불교는 어떤 죄의식도 심어주지 않는다.
불교는 후회가 아니라 성찰에 찬성한다. 과거는 과거이다. 지나간 것은 영원히 지나간 것이다.
지나간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만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을 명심하라.
더 주의깊은 의식을 가져라.








아름답지만 향기가 없는 꽃처럼,

체험이 없는 자의 말은

아무리 훌륭해도

공허할 뿐이다.

오쇼 법구경 강의 : 기계적으로 경전을 암송하는 자들, 그들의 말은 겉보기에 훌륭해도 공허할 뿐이다.
그들은 겉모습이 아름다울 뿐 향기가 없는 꽃과 같다.
그들은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이다.
그들에겐 향기와 생기가 없다. 경전의 권위를 등에 업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 자신의 권위를 갖고 말할 때에야 비로소 향기가 전달된다.
학식있는 학자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직접 본 목격자로서 말할 때,
깨달은 자로서 말할 때, 그럴 때에야 비로소 향기가 풍겨나온다.








아름다우면서도 향기가 있는 꽃처럼

체험이 있는 자의 말은

훌륭하고도 진실되도다.

오쇼 법구경 강의 : 다른사람의 말을 반복하지 말라. 직접 체험하라. 그리고 오직 그대가 체험한 것만을 말하라
그러면 그대의 말은 공허하지 않을 것이며 저절로 권위와 향기가 배어나올 것이다.
그대의 말은 사람들을 유혹할 것이다. 유혹할 뿐만 아니라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대의 말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길 것이며, 가슴을 열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대의 말을 통해 변형될 것이다.
그대의 말에는 숨결과 생기가 담길 것이다. 힘찬 고동소리가 있을 것이다.







여러가지 꽃을 모아 화환을 엮듯이

그대의 삶에서 많은 선행을 지어라.

오쇼 법구경 강의 : 그대의 삶을 선행의 꽃목걸이로 만들라.
그러나 붓다에 따르면, 선행은 그대가 더 주의 깊고 깨어있을때에만 가능하다.
선행은 품성으로써 계발되는 것이 아니다.
선행은 그대의 존재가 더 의식적으로 됨에 의해 생기는 부산물이 되어야 한다.
불교는 품성이 아니라 의식을 강조한다. 그것이 인류와 그 진화에 대한 불교의 가장 지대한 공헌이다.





누가 진리의 빛나는 길을 발견할 것인가? - 오쇼 라즈니쉬 법구경 강의中
 



전단향과 로즈베이와 재스민 향기도

바람을 거슬러 가지는 못한다.

오쇼 법구경 강의 :  전단향과 로즈베이와 재스민의 향기는 물질세계에 속한다.
꽃향기는 오직 바람을 따라 여행할 뿐, 바람을 거스르지는 못한다.
꽃향기는 물질의 법칙을 따라야한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상대적인 관점에서만 자유로울 뿐이다. 향기는 꽃보다 자유롭다.
꽃은 나무보다 자유로우며, 나무는 씨앗보다 자유롭니다.
그러나 이런 자유는 상대적인 자유일 뿐, 절대적인 자유가 아니다.

붓다는 절대적인 자유, 즉 모든 법을 초월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그대는 모든 법을 초월함으로써만이 궁극적인 법의 일부가 될 것이다.
물질의 한계를 초월할 때에만 하늘만큼 무한해질 것이다.

그리고 우주가 되지 못했다면 그대는 자신의 잠재성을 실현한 것이 아니다.
그대는 우주가 되기로 되어 있는데 작은 인간 안에 갇혀 있다.
그대는 에고, 탐욕, 분노, 욕정, 질투, 소유욕 등 온갖 정신병적인 감정에 포위되어 있다.
그대는 문도 없는 깜깜한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 감옥들에서 벗어나기는커녕, 그들을 멋있게 장식하고 더욱더 편안하게 꾸민다.
우리는 중력의 법칙 하에 죄수로서 살아간다. 우리는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붓다는 말한다.
"그것을 경계하라, 그대는 자신의 삶을 무엇으로 만들고 있는가?
그대가 자신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그러나 덕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

세상의 끝까지 닿는다.

오쇼 법구경 강의 : 붓다는 내면에 전단향과 로즈베이, 재스민보다 훨씬 아름다운 꽃이 있다고 말한다.
그 꽃의 아름다움은 절대적인 자유에 있다.
그 꽃은 바람을 거슬러 갈 수있다. 진정으로 유덕한 사람은 자유롭게 산다.
그는 계명과 경전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빛을 따른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따라 산다. 그는 혁명가이다.

붓다는 진정한 덕의 향기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 소위 '정도正道' 라고 불리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소위 '인격자'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세상에서 소위 '성자'라고 불리는 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보다는 전단향과 로즈베이와 재스민의 향기가 훨씬 더 자유롭다.
그들은 인간이 만든 법에 따라 산다. 최소한 꽃은 자연의 법을 따른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이 만든 법, 즉 눈멀고 무지한 자들이 만든 법, 아직 깨어나지 못한 자들이 만든 법,
의식의 각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 만든 법을 따른다.

세상에서 소위 성자와 지도자라고 불려지는 사람들은 그들의 추종자들의 추종자이다.
세상의 모든 상황이 이토록 어리석고 우스꽝스럽다.
표면적으로 볼 때에는 성자가 결정적인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따르도록 충고한다.
그러나 더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성자는 추종자들을 따르고 있다.
실제로는 추종자들이 모든것을 결정한다.

그들이 결정권을 갖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대를 숭배할 수도 경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가 그들의 관념과편견을 따른다면 그들은 그대를 성자로 숭배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 그대는 더이상 성자가 아니다. 그들은 그대를 깎아내릴 수 있다.
그들은 그대를 성자로 추켜 세울 수도 있고, 죄인으로 깍아내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자로 추앙받기를 원한다면 그대는 그들의 온갖 어리석음을 따라야 한다.
내심 그대는 그 모든 어리석음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덕이란 무엇인가?

덕이란 외부의 영향에 의해 배양되는 품성이 아니다.
덕은 명상적인 태도에서 발산되는 향기이다. 명상이라는 꽃의 향기가 덕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덕이 정의와 도덕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먼저 명상이 일어나야 한다.
인격은 그 다음에 그림자처럼 저절로 따라온다.
만일 명상이 없다면 그때에 그대의 인격은 위선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의성자들은 위선자들이다. 그들은 말과 생각이 다르다
어쩌면 정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단향과 로즈베이,

청련화나 재스민의 향기보다

덕의 향기는 얼마나 훌륭한가!

오쇼 법구경 강의 : 그대는 성직자들에게 먼저 품성을 연마하면 그 다음에 중심이 변할것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이것은 완전히 난센스이다.
중심은 결코 주변을 따를 수 없다. 중심은 더 중요하고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심인것이다. 중심은 주변을 따르지 않지만 주변은 항상 중심을 따른다.
먼저 중심을 변형시켜라. 그리고 주변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

이것은 나의 강조점이기도 하다. 이런점에서 나는 붓다와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먼저 명상하라.그러면 그 외의 모든 것은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덕은 진정 훌륭한 향기를 갖는다. 그리고 그 향기는 세상 구석구석까지 가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대들은 어떻게 해서 이곳으로 나를 찾아왔는가?
그대들은 세상 각처에서 왔다. 왜 왔는지 이유도 잘 모르면서 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인가 그대들을 이곳으로 잡아 끌었다.
알 수 없는 힘이 그대들의 가슴을 움직였다. 그대는 어떤 향기를 맡았음에 틀림없다.
눈에 보이는 것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향기 말이다. 그것은 비가시적 현상이다.







전단향과 로즈베이의 향기는

멀리 가지 못한다.

그러나 덕의 향기는 하늘 끝까지 오른다.

오쇼 법구경 강의 : 불성의 향기는 세상 끝까지 퍼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아무 제한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붓다의 육체가 사라진 뒤에도 향기는 그대로 남아 계속 퍼져 나간다.

만일 이 우주를 어떻게 마시는지, 어떻게 우주와 교신하는지 않다면 그대는 깜짝 놀랄 것이다.
그때엔 모든 붓다가 살아난다.
그들 모두가 동시대인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아무 차이점도 만들지 못한다.

그렇다. 그대는 고탐 붓다의 이웃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함에 의해 가능하다.
명상속에서 그대는 시공을 초월한다. 명상 속에서 그대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시간과 공간을 모른다. 시공을 초월하여 그저 존재할 뿐이다.





깨어 있고 덕스러운 이에겐

욕망도 길을 막지 못하리라.

밝음이 그들을 자유롭게 하기에.

오쇼 법구경 강의 : 욕망은 정치가이다.
하나의 욕망이 수 년 동안 그대를 사로잡지만 실망과 좌절을 안겨줄 뿐이다.
그대는 결국 그 용망을 포기한다. 그러면 즉시 다른 욕망이 들어와 그대의 마음을 차지한다.
항상 다른 정치가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그대는 돈을 추구하다가 싫증을 느낀다.
그러면 돈에 대한 욕망은 잊고 권력이나 명예를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욕망은 매우 교활해서 종교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욕망은 어떤 가면이라도 쓸 준비가 되어있다.
욕망은 천국의 쾌락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욕망은 이번 생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다음 생에서는 낙원에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준다.
그대는 천당에서 무슨 쾌락을 구하겠는가? 그대가 단 하루만 천당에 들어갔다고 상상해보라. 그 때엔 무엇을 원하겠는가?
그대는 호텔, 영화관, 여자 또는 남자를 원할 것이다. 그밖엔?
세상에 있을때와 똑같은 욕망이다! 그리고 똑같은 실망이 따를 것이다.

무욕의 상태가 되는 유일한 길은 깨어있고 주의 깊은 의식을 갖는것이다.
주의 깊을 때 그대는 내면에 빛나는 광채가 있다. 훌륭한 지성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보통 사람은 어리석음 안에서 산다. 그러나 내면의 음악과 조화를 이루는 순간,
명상의 상태에 몰입하는 순간, 훌륭한 지성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그 지성 안에서는 욕망에 기만당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
그대는 오해를 멈추고 난생 처음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길가에 쓰레기 더미에서
 
피어나는 연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순수한 향기가

가슴을 기쁨에 넘치게 하네

오쇼 법구경 강의 : 가슴이 중요하다는 것을 되풀이해서 명심하라.
그대는 자꾸 잊는 경향이 있다.
가슴이 기쁨에 넘칠 때 그대의 삶은 분명히 성장하고 팽창하는 중이다.
그대의 의식은 더욱더 명철해지고 있으며 그대의 신성은 구속에서 해방되고 있다.

붓다는 연꽃을 가르키는 말로 '판카즈pankaj' 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가장 아름다운 단어중의 하나이다.
'판카즈'는 더러운 진흙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꽃은 존재계에서 가장 기적적인 현상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연꽃을 영적인 변형의 상징으로 이용한다.
붓다는 연꽃 위에 앉아 있다. 비쉬누도 연꽃 위에 서있다. 왜 연꽃인가?
연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진흙은 더럽다.
썩는 냄새를 풍길지도 모른다. 그런데 냄새나는 진흙에서 나온 연꽃은 향기롭다.

그와 마찬가지로 대개의 경우 삶은 냄새 나는 진흙에 불과하지만 거기엔 연꽃이 필 가능성이 숨어있다.
진흙은 변형되어 연꽃이 된다. 섹스는 변형되어 사마디가 될 수 있다.
분노는 자비로 변형될 수 있다. 소음에 가득찬 그대의 마음은 텅 비어 변형될 수 있다.
그 마음은 천상의 음악이 된다.








깨어 있는 자를 따르라.

그러면 눈먼 자들의 틈에서도

그대 지혜의 빛이 순수하게

피어나리니.

오쇼 법구경 강의 : 구제프는 "그대가 감옥 안에 있다면 감옥 밖에 있는 자만이 그대를 구출할 수있다." 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그대는 감옥 안에 있을 뿐만아니라 감옥을 집으로 생각하도록 세뇌당했다.
그대는 그 곳을 집으로 믿으면서 아름답게 치장한다. 그대의 평생은 감옥을 치장하려는 노력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대는 어두운 감방을 장식하고 있는 다른 죄수들과 경쟁한다.

오직 자유로운 사람, 감옥에 있다가 벗어난 사람만이 그대에게 실상을 깨우쳐 줄 수 있다.
그는 그대를 세뇌에서 벗어나게 만들 수 있다.
스승을 발견한다면 기회를 놓치지 마라. 그의 존재 안에서 복종하고 휴식하라.
그의 각성된 의식을 흡수하라.
그의 향기가 그대를 둘러싸게 하라. 그러면 그대 또한 깨어날 날이 멀지 않다.
그대 또한 붓다가 될 것이다.
붓다가 아닌 한 그대의 삶은 순전히 낭비라는 것을 가슴속에 새겨라
삶이 아름다움, 지성, 중요성, 은총을 갖기 위해선 오직 붓다가 되는 길밖에 없다.









법구경은 팔만대장경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다.원래의 책이름은 빠알리어로 담마빠다(Dhammapada 법구경), 또는 산스크리스트어로는  다르마파다 (Dharmapada 법구경)라고 한다.
그 뜻은 오늘날의 말로 '가르침의 조각들' 또는 '진리의 길' '진리의 말씀' 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가르침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고 그것은 다시 '진리'라고 표현될 수 있고,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이해될 수도 있다.
...
그리고 법구경에는 한 종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살아 계실 때에 여러 북인도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가르침을 전했기 때문에,
어떻게 가르침을 모았느냐, 어떻게 시들을 모았느냐에 따라서 여러가지 경전들이 있다.
그리고 경전들 가운데는 같은 경이라도 시들의 숫자나 해설이 차이가 나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빠알리 법구경은 부처님 께서 살던 당대 (B.C 6세기) 인도의 언어였던 빠알리어로 이루어진 것으로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등에서 자기나라의 문자로 표기하여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이 있는 가장 간략한 판본이다.
...이 법구경은 주제에 따라 26품으로 나뉘어 423개의 시들을 포함하는 시선집이다.




법구경-담마파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해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