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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꾼에게 밤은 길어라 - 오쇼 라즈니쉬 법구경 강의 中


 





야경꾼에게 밤은 길어라.

고단한 길손에게 길은 멀어라.

길을 잃은 어리석은 사람에게

숱한 생의 방황은 끝이 없구나.

 
오쇼 법구경 강의 : 야경꾼에게 밤은 길다. 왜? 그는 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억지로 깨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투쟁이며 본성에 대항하는 것이다.
밤은 휴식하고 잠자도록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그는 본성에 대항해 싸운다.
어리석은 자는 야경꾼과 같다, 그는 본성에 맞선다. 그는 흐름을 거슬러 헤엄치기 위해 애쓴다.
당연히 그의 불행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불필요할 정도로 길어진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불행을
수천배는 더 배가시킨다. 휴식하고 방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깊은 휴식을 취할수록 밤은 더 빨리 지나간다.
만일 그대의 휴식이 전체적이라면 시간은 사라진다. 이것을 이해해야한다.

어리석은 자는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왜? 그는 이미 길은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길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틀리고 그만이 옳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자기 뒤를 따라오기만 하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광신주의자이다. 그에게는 성경, 코란, 베다가 있다. 그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
그는 온갖 종교의 교리에 통달했다.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그는 길을 안다!

그러나 '길' 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붓다는 '담마'를 의미한다.
그가 의미하는 길은 그대를 에고와 마음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길이다.
그대를 아이덴티티에서 벗어나게 하여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드는 길, 전체 안에 용해되도록 만드는 길,
이것이 붓다가 의미하는 길이다.




길벗할 스승이나 친구를

찾을 수 없거든

어리석은 자와 동행하느니

차라리 혼자 길을 떠나라.
 
오쇼 법구경 강의 : 스승을 찾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스승은 가장 좋은 친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붓다는 '스승이나 친구'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군중 속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군중 속에서는 자신의 열등함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람들이 군중을 떠나지 않는 이유이다.
힌두교인, 기독교인, 모하메드교인 모두 일종의 군중들이다.
그렇게 수많은 군중 집단이 있다. 그리고 아무도 군중을 떠나려하지 않는다.
설령 하나의 집단을 떠난다 해도 그들은 즉시 다른 집단과 어울린다.
그들은 이쪽 감옥을 탈출하여 저쪽 감옥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혼자 살 수 없다.
붓다는 바보들과 함께 사는니 혼자 사는 게 낫다고 말한다.
만일 스승이나 친구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들을 발견할 수 없다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다. 물론 혼자있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군중이 수많은 어려움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군중은 개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군중에 의존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그대를 문제에 빠뜨릴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들은 정화의 기회이며 도전이다.
그 문제 상황들은 그대의 지성을 날카롭게 갈고 그대을 지혜롭게 만들 것이다.



"나의 아이여, 나의 재산이여!"


어리석은 자는 이렇게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아이와 재산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도 아닌 것을.


오쇼 법구경 강의 :
우리는 홀로 왔다가 홀로 간다.
우리는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간다.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안다.
그래서 그는 어느 것에 대해서도 '나의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물건을 사용하지만 소유하지 않는다.
사용하는 것은 완벽하게 옳다. 세상의 모든 것을 사용하라. 그것들은 그대를 위해 있는 것이다.
세상은 신의 선물이다. 그것을 사용하라! 그러나 소유하지는 말라. 소유자가 되는 순간, 그대는 그것을 사용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이 그대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소유하는 순간, 실상 그대는 소유물에 의해 소유당하는 것이다.
그대는 물건의 노예가 된다.
소유라는 관념은 매우 어리석다. 그대가 무엇을 소유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그대 자신조차 소유하지 못한다.
그러니 다른 것을 소유 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자신의 주인조차 아니다.

 


 


어리석은 자가 스스로

어리석은 줄 알면

그만큼 더 지혜롭도다.




그러나 어리석은자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은 자이로다.

오쇼 법구경 강의 :
어리석은 자는 항상 오직 한가지, 그의 에고에 관심을 갖는다.
그를 위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좋다. 그는 기꺼이 그것에 집착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어리석은 자는 불행에도 집착한다. 그것은 '그의 불행'이기 때문이다.
그는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축적한다.
그는 내면의 왕국, 내면의 보물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해서 쓰레기를 축적한다.
그 쓰레기들이 소유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안팎으로 계속 긁어모으기에 여념이 없다.
그들은 물건과 생각을 모은다. 물건은 외부의 스레기이며 생각은 내면의 쓰레기이다. 그리고 그들은 쓰레기에 묻혀 익사한다.

그대가 삶을 갖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로부터 무엇을 얻고 있는지 냉정하게 관찰해 보라,
그대 자신을 속이려 하지 말라. 마음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네가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는지 보라! 은행에는 많은 돈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너를 알아보고 존경한다.
그는 높은 지위에 올랐으며 정치적으로도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이밖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삶은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었다."

그러나 돈, 권력, 지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죽음이 찾아와 모든 것을 쓸어갈 것이다.
모든 것이 카드로 지은 집처럼 허물어질 것이다. 죽음의 숨결이 한 번만 닿아도 모든 것이 산산조각난다.
명심하라. 죽음의 너머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을 갖지 못했다면 그대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것이다.
그대는 빈 손이다. 죽음을 초월하여 영원한 어떤 것을 갖지 못했다면 그대는 어리석은 자이다.
붓다는 명상, 자비, 깨달음이라는 진정한 보물을 획득한 자를 지혜롭다고 부른다.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

어리석은 사람은

스승과 평생을 살아도 길을 잃고 헤맨다.


오쇼 법구경 강의 :
스승의 동반자가 되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다.
깨어있는 자와 동료가 됨으로써 그대 또한 깨어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깨어있는 자는 그대를 깨울 수 있다. 깨어있음은 전염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대를 꿈과 악몽에서 흔들어 깨울 수 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스승과 평생을 함께 살아도 소용없다.
그는 머리를 통해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승을 놓치는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도 소수의 사람들은 놓치고 있다.
그들이 머리 지향적인 자세를 고집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놓칠 것이다.
이곳은 머리로 살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다. 머리를 버려라! 진정한 산야신은 머리없이 산다.
그는 가슴으로 살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가슴을 통해서만 그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교류의 가능성은 가슴을 통해서만 일어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내 말만을 들을 것이고,
그 말들을 주워모아 앵무새처럼 반복할 것이다. 그것은 쓸모없는 짓이다. 나를 직접 맛보지 않는 한 ,
나를 마시지 않는 한 그대는 나와 교류할 수 없다.



혀가 국맛을 알듯,

깨어있는 사람은

스승과 한 순간만 함께 있어도

길을 보게 되리라.

오쇼 법구경 강의 :
단 한 순간으로 충분하다! 스승과 오래동안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상관없다. 그것은 스승과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대가 스승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다.
얼마나 강렬하고 정열적으로 스승과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느낌의 깊이가 문제이다. 그때엔 한 순간만 깨어있어도
한 순간만 침묵해도 위대한 전달이 일어난다. 모든 경전을 초월한 전달이 일어난다.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의 적.

그가 저지른 악은 자신의 파멸.

그는 얼마나 쓰디쓴 고통을 겪는가!


오쇼 법구경 강의 :
붓다는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의 적' 이라고 말한다. 왜?
그가 존재계의 의미있는 모든 것을 계속 놓치는 것은 그 자신의 탓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길을 막지 않는다. 삶의 시는 누구든지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귀를 막고 있다.
삶은 빛으로 충만하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제 눈을 가린다.
삶은 신성한 즐거움과 아름다운 꽃을 끊임없이 뿌려주지만 그는 완전히 잊고 있다.
그래서 간혹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꽃을 만나도 그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그는 " 나는 속고있음에 틀림없어" 하고 말한다.

뭔가  그대를 압도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그대는 즉시 몸을 움츠리고 타조처럼 눈을 감아버린다.
그대는 간단하게 그것을 부정하고 그것은 사실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신이 그대의 길 위에 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신은 여러번 그대를 찾아왔다.
그러데 그대는 문을 열지 않는다. 오히려 그대는 계속해서 합리화시킬 구실을 찾는다. 그대는 이렇게 말한다.
"바람이나 비 때문에 소리가 나는 거야. 아니면 이웃집 아이들이 계단 위에서 문을 두드리며 노는 소리일 거야."
그대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설명할 뿐, 문을 열고 밖에 누가 왔는지 내다보지 않는다.




왜 후회할 일을 하는가?

왜 스스로 눈물을 흘리려 하는가?




후회하지 않을 일만하고

자신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라.

오쇼 법구경 강의 :
기쁨과 지복을 자져다 주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진실되다.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라. 지복은 신의 본성이다. 진리는 지복의 다른 이름이다.
비진리는 불행을 가져온다. 거짓 속에 산다면 그대는 불행하게 살 것이다. 만일 그대가 지금 불행하게 살고 있다면 그것은 그대 스스로 거짓위에 삶의 기초를 세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그 거짓이 무엇인지 찾아라. 그 거짓으로부터 그대 자신을 회수하라. 시간을 낭비하며 연기하지 말라.
즉시 철회하라! 그 철회를 나는 '산야스'라고 부른다.
그것은 세상으로부터의 퇴각이 아니다.
그대가 지금까지 의존해서 살아온 거짓으로부터 퇴각하는 것이다.
산야스는 세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가 삶의 기초로 삼고 있는 거짓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대가 거짓과의 관계를 끊는 순간, 그것들은 죽기 시작한다. 그들은 그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대의 지원이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대의 협조가 끊기는 순간 모든 거짓은 사라진다. 그리고 모든 거짓이 사라진 후 남은 것이 진리이다.

진리는 그대 내면의 핵심부에 있는 본성이다.
진리는 그밖의 다른 곳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에싸 담모 사난따노... 이것이 영원한 법이다. 진리는 그대의 내면에 있다.
그대는 어디로도 갈 필요가 없다.
한 가지 조건을 충족히키기만 하면 진리는 그대의 내면에서 발견된다.
그 조건이란 그대가 막대하게 투자를 한 거짓들을 철회하는 것이다. 거짓과의 관계를 끊어라. 진리가 아닌 것을 포기하라

지혜는 존재의 릴랙스된 상태이다.
지혜는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다. 지혜는 그대 내면의 존재가 깨어 있고 주으 깊은 상태이며,
주시의 빛으로 가득 찬 상태이다. 그대의 내면을 빛으로 가득 채워라.
그것은 그대의 선천적인 권리이다.
만일 그 빛을 놓친다면 그대는 어리석은 자이다. 그대는 이미 여러 생 동안 그 빛을 놓쳐왔다.
이제는 그대 자신을 좀더 자비롭게 대하라.



 
법구경 | 담마파다 5.어리석은 자의 품 [Balavagga]
 
 

법구경 | 담마파다 5.야경꾼에게 밤은 길어라 -오쇼/어리석은 자의 품 [Balavagga]


1.
잠 못 이루는 자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자에게 길은 멀다.

올바른 가르침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에게 윤회는 아득하다.



2.
더 낫거나 자신과 같은 자를

걷다가 만나지 못하면,

단호히 홀로 가야하리라.

어리석은 자와의 우정은 없으니.



3.
'내 자식, 내 재산'이라고

어리석은 자는 괴로워한다.

자기도 자기 것이 아니거늘

하물며 자식, 하물며 재산이랴.



4.
어리석은 자가 어리석음을 알면

그로써 현명한 자가 된다.

어리석은 자가 현명하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은 자라고 불린다.



5.
어리석은 자는 평생을

현명한 님을 섬겨도

국자가 국 맛을 모르듯,

진리를 알지 못한다.



6.
양식있는 자는 잠깐만

현명한 이를 섬겨도

혀가 국 맛을 알듯,

진리를 재빨리 인식한다.



7.
지혜롭지 못한 어리석은 자는

자신을 적으로 삼아 방황한다.

악한 행위를 일삼으며

고통의 열매를 거둔다.



8.
행한 뒤에 후회하고

얼굴에 눈물 흘리며 비탄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



9.
행한 뒤에 후회하지 않고

만족스럽고 유쾌한

결과를 초래하는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이 좋다.



10.
악행이 여물기 전까지는

어리석은 자는 꿀과 같다고 여긴다.

그러나 악행이 여물면,

어리석은 자는 고통을 경험한다.



11.
어리석은 자는 달마다

꾸싸 풀의 끝으로 음식을 먹어도,

진리를 이해하는 님에 비하면,

그 십육분지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12.
새로 짠 우유가 굳지 않듯,

악한 행위는 드러나지 않는다.

재속에 숨어있는 불처럼,

작열하며 어리석은 자를 쫒는다.



13.
어리석은 자에게 지식이 생겨난다.

오직 그의 불익을 위해서,

그것이 그 어리석은 자의 행운을 부수고

그의 머리를 떨어뜨린다.



14.
그는 헛된 특권을 바란다.

수행승 가운데 존경을,

처소에서는 권위를,

다른 사람의 가정에서는 공양을 바란다.



15.
재가자나 출가자 모두

'오로지 내가 행한 것이다.'라고 여기고

어떤 일이든 해야 할 일이나 하면 안 될 일도

'오로지 나의 지배아래 있어야 한다.' 라고 생각한다.

어리석은 자는 이렇게 생각하니

그에게 욕망과 자만이 늘어만 간다.



16.
하나는 이득을 위한 수단이고

다른 하나는 열반의 길이다.

이와 같이 곧바로 알아

수행승은 깨달은 님의 제자로서

명성을 즐기지 말고

멀리 여윔을 닦아야 하리.







 법구경 소개  

법구경은 팔만대장경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다.
원래의 책이름은 빠알리어로 담마빠다(Dhammapada 법구경), 또는 산스크리스트어로는  다르마파다 (Dharmapada 법구경)라고 한다.
그 뜻은 오늘날의 말로 '가르침의 조각들' 또는 '진리의 길' '진리의 말씀' 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가르침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고 그것은 다시 '진리'라고 표현될 수 있고,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이해될 수도 있다.
...
그리고 법구경에는 한 종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살아 계실 때에 여러 북인도의 지역을 돌아다니며 가르침을 전했기 때문에,
어떻게 가르침을 모았느냐, 어떻게 시들을 모았느냐에 따라서 여러가지 경전들이 있다.
그리고 경전들 가운데는 같은 경이라도 시들의 숫자나 해설이 차이가 나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빠알리 법구경은 부처님 께서 살던 당대 (B.C 6세기) 인도의 언어였던 빠알리어로 이루어진 것으로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등에서 자기나라의 문자로 표기하여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이 있는 가장 간략한 판본이다.
...
이 법구경은 주제에 따라 26품으로 나뉘어 423개의 시들을 포함하는 시선집이다.




법구경-담마파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해제 中





↘범어 법구경을 번역한 유기난은 천축(인도)의 승이다. 그의 전기에 의하면, 그는 삼장(三藏)에 밝고 , 특히 아함경(阿含經)에 밝아, 뒤에 서역(西域)으로부터 중국에 와서, 위(魏)나라 황무 3년에 입률염(笠律炎)과 이 법구경을 번역했던 것이다. 이 법구경은 제일 무상품으로부터 제 39품 길상품에 이르는 것을 모두 번역한 것으로, 간단하기는 하지만 불교의 전체의 내용을 보여 주고 있으며, 실제로 인간생활의 여러 분야에 걸쳐 다 포함되어 있다.